한반도 평화공존 구상에 대한

북유럽 청년의 시각

북극은 더 이상 세계사의 변방에 머물러 있는 조용하고 외딴 지역이 아닙니다. 북극은 지정학·경제·환경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고립된 개별 과제의 집합이 아니라, 지정학과 기후, 인프라와 산업이 서로 맞물리는 단일하고 상호연결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글. 스웨덴 국제문제연구소(UI)
Synne Norseth

북극 해빙이 지속될 경우, 북극항로(ASR)는 궁극적으로 항해가 가능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그 시점은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북극항로(ASR)는 러시아 연안을 따라 형성된 북동해로(NSR)와 북극해 중앙을 횡단하는 북극중앙항로(TSR)를 포함하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전략적 지름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북극항로(ASR)를 활용하면 운송 거리는 약 40% 단축되고, 운항 시간은 최대 10일, 연료비는 약 25%까지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말라카 해협, 호르무즈 해협, 수에즈 운하 등 교통 혼잡과 안보 위험이 상존하는 해역을 우회할 수 있게 합니다. 북동해로(NSR)나 북극중앙항로(TSR)가 실질적으로 활용될 경우, 아시아–유럽 간 화물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부산을 경유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북극경제이사회는 한국선주협회를 최초의 비북극 회원으로 받아들이며, 한국의 북극 지속가능 발전에 대한 기여 의지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자료 : 해양수산부

한국은 북극 국가가 아니지만, 북극의 미래와 점점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북유럽 국가(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들은 지정학적 불안정성에 노출된 국가이며, 기술적으로 진보한 경제 구조를 갖추고 있고, 그린 기술과 녹색 전환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북극에서의 경쟁이 심화될수록 신뢰 가능한 협력 주체로서 한국의 역할은 커지고 있습니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등 한국의 주요 조선소는 이미 쇄빙등급 선박을 건조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극지 연구선 분야로도 역량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해사청이 신형 쇄빙선 건조 사업자로 현대중공업을 선정한 사례는 한국 조선 기술에 대한 북유럽의 신뢰를 보여줍니다. 조선업을 넘어 한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시추 플랫폼, 자율 시스템, 디지털 물류 등 다양한 첨단 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편, 북유럽 국가는 북극 운용 경험과 규제 체계, 실증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호보완적 역량은 한국을 아시아와 북극을 연결하는 가교로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한국은 북극에 대한 관심과 포부를 국가 법률과 정책 전략, 거버넌스 체계에 반영하며 이를 구체적인 제도로 발전시켜 왔습니다. 한국은 2013년부터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에서 영구 옵서버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극지 활동에 대한 관심은 2002년 스발바르에 다산연구기지를 설립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또한 북극이사회 워킹그룹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협의체를 핵심적인 협력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극 정책은 그동안 상업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돼 왔으며, 북극항로(ASR) 중 하나인 북동해로(NSR)를 해양산업 확장의 전략적 축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2019년 「북극활동 진흥을 위한 정책 프레임워크」는 이러한 접근을 ‘경제협력’이라는 보다 외교적인 표현으로 정리하며, 이를 한국 북극정책의 핵심 개념으로 제시했습니다.

한국은 2021년 「극지활동진흥법」을 제정하며 극지 참여에 대한 국가적 의지를 제도적으로 명확히 했습니다. 이 법은 남·북극을 하나의 통합 정책 틀인 '한국 극지정책 기본계획(Korea Polar Policy Masterplan)'으로 묶고, 해양수산부가 이를 5년마다 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2023년 개정된 최신 계획에는 6,950톤급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잇는 차세대 1만 5,000톤급 쇄빙연구선 개발 등 야심찬 목표가 포함돼 있습니다.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스스로를 '쇄빙선 장관'이라 표현하며 북극 정책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고,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역시 북극 해운항로에 대한 전략적 관심을 보여줍니다. 한국은 항만 인프라 확충과 쇄빙선 건조, 북극 해운 관련 사업을 위해 1조 6,6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 또한 북극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투자 규모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입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는 극지 연구에 10억 크로네를 배정했습니다.

한편, 북극 지역에는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스마트폰 생산에 필수적인 희귀 광물과 자원이 풍부합니다. 해빙이 진행되면서 이들 자원에 대한 접근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희토류 금속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에게 북극은 전략적 대체 공급원이 될 가능성을 지닙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북대서양에서 무배출 해운 항로를 구축하고 있으며, 한국의 항만과 조선 산업은 이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더불어, 한국 해양수산부, 덴마크 해운청,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탈탄소화와 디지털화, 북극 연구를 주제로 공동 협력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한국극지연구소(KOPRI)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북유럽 주도의 탐사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트롬쇠에 설립된 공동 연구센터는 양국 과학자 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는 북극항로를 한반도 평화공존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국제 해운항로가 아니라, 육로가 단절된 한반도에서 해양을 통해 남북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현실적인 협력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산과 동해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북극항로는 남북이 공동으로 활용 가능한 해양 교류의 틀을 제공하며, 북한 동해의 청진이나 원산과 같은 항만을 중간 기착지로 활용할 경우 남북 공동 해양 물류망 구축이라는 새로운 가능성도 열립니다. 이는 북한에는 항만 현대화와 외화 수입의 기회를, 한국에는 물류비 절감과 북방 진출이라는 실질적 이익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해는 북극항로의 출발점이자 러시아·일본·북한이 맞닿은 전략적 공간으로, 남북이 북유럽 국가들과 함께 환경 관리, 해상 안전, 재난 대응과 같은 비군사적 협력부터 신뢰를 축적해 나갈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북극항로를 매개로 한 이러한 해양 협력은 경쟁과 대립이 아닌 관리와 공존의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이자, 한반도에서 평화공존을 구체화하는 또 하나의 경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