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통일을 이룬

'신원에벤에셀 개성공장'
이야기

[사진으로 보는 그 때, 그 순간] 네 번째 순서로 '신원에벤에셀 개성공장' 이야기를 준비하였습니다. 그 때, 그 순간으로 지금부터 떠나봅시다!

글·사진. 황우승
前(주)신원 부사장 /
現(주)신원에벤에셀 개성법인 법인장

신원 공장부지

신원 공장부지

개성공단은 2000년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의 옥동자로서 한국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해 저비용 생산과 더불어 남북경제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군사적으로 긴장되어 있던 남북 접경지역에 평화적 경제 공간이 마련되어 "경제협력이 곧 평화"라는 상징적인 사례를 남겼지만 2016년 2월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문제를 계기로 우리 정부에서는 전면중단이라는 대응으로 맞서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2004년 12월 시범단지 입주가 시작되면서 입주업체 15개 중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신원에벤에셀 공장이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후 본 단지에 제2공장을 건축하면서 총 2천여 명의 북측 종업원들과 함께 작은 통일 경제 공동체를 이루어 가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신원은 먼저 시범단지 입주업체로 선정된 이후 곧바로 착공에 들어가 공장부지 정리 작업과 함께 연약지반에 파일을 박고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건물 준공예정일(2005년 2월) 전에 개성 시내에 있는 피복공장(9.14 피복, 개성피복, 은하피복, 송도피복, 봉동피복 등)에서 제조공정(재단, 봉제, 완성 등)에 필요한 북측 숙련공들을 사전에 선발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중국 대련에 있는 신원공장에서 2004년 11월 29일부터 12월 6일까지 북측 로력(근로자)에 대한 연수를 받았습니다.

신원 북측 로력(근로자) 중국 대련 연수
(2004.11.29.~12.6.)

제1공장 샤워실

남북의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문화적 배경은 달랐지만 제3국에서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북측 종업원들의 봉제 기술 수준과 품질제고에 대한 평가와 함께 조선말, 일본어, 영어로 나뉘어 있는 봉제용어도 통일하는 결과물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후 개성공장 복귀 후 공장 초기 안정화는 물론 신원에벤에셀 공장의 성장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제2공장 샤워실

공장 준공과 함께 북측 종업원들은 순차적으로 입사하며 곧바로 적응해나갔습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종업원들을 보며 '이들이 더욱 더 편안하고 깨끗한 장소에서 근무하며 건강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점심식사 때 북측 종업원들을 위한 국을 준비했었는데, 가능한 고깃국, 생선국 등 영양가 많은 메뉴로 조리하여 배식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한겨울 따뜻한 온수 조달이 쉽지 않았던 북측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향후 입사할 종업원용으로 남겨 두었던 탈의실을 급히 개조하여 샤워시설을 갖추게 했습니다. 또한 회사에서는 샤워실 내에 세탁기와 짤순이(탈수기)도 여러 대 배치하여 샤워뿐만 아니라 빨래를 해 갈 수 있도록 부녀자들의 편의를 제공하였는데 이는 종업원들이 가장 만족스러워 하는 복지시설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방문

회사는 종업원들에게 먹거리와 입을 거리 그리고 복지시설의 확충 등을 통해 저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대신 종업원들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점심시간에도 쉬지 않고 스스로 잔업을 자청하여 손발을 움직여 주었습니다. 그 결과, 회사는 소기의 목표들을 달성해 6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이에 신원은 2005년 5월 북한에서는 최초로 패션쇼(피복전시회)를 개최하여 국내 언론은 물론 CNN, ABC 등 해외 언론을 통해서 '개성공단이 최적의 생산처'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후 2007년 10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신원공장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원 피복 전시회

개성공단의 가장 커다란 강점이라면 누가 뭐래도 '인건비 대비 고급 인력을 활용해서 고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라는 점입니다. 또한 소비시장인 남측과 근접해 있는 지리적 장점은 다른 어떤 생산처와도 비교 불가였습니다. 최초 3년 간 최저로임(인건비)은 인당 $50로서 당시 국내 봉제공장의 1/12이었으며 2016년 철수시점에는 인당 $185로 국내 인건비 대비 1/8 수준이었습니다. 공단 시작 이후 각 회사별 특성에 맞게 근속수당, 직급수당, 성과급 등 부수적인 상여금을 지급해 주었습니다만 다른 생산처와 비교하여 인건비 부담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본사로부터 받게 되는 복종별 평균 임가공 책정 단가 수준은 남측의 1/2, 중국에 비해서는 2/3,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지역에 비하여 3/4수준으로 책정되었습니다. 또한 물류와 품질수준에 있어서도 그 어떤 생산처와 비교할 수 없는 곳이 개성공단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은 퍼주기 사업이 아니라 퍼오기 사업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신원 생산현장

정문인사

북측 종업원들과의 소통 채널이 개별 면담이나 별도의 비공식적인 만남으로 이뤄질 수 없는 구조이기에 서로 눈을 마주치며 사랑과 신뢰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정문인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벽 아침 출근길 공장문을 들어서는 저들이 반가웠고 고맙기도 하여 공장 초기부터 법인장을 비롯해 부서장들이 정문에 나와서 저들을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이 출퇴근 인사는 2016년 2월 공단이 중단되는 날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번도 빼먹는 일이 없이 마치 목숨을 걸고 하듯 성실하게 하였습니다.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동무들을 바라보며 "어서와! 어서오세요! 편히 쉬셨습니까? 밥은 먹었어? 춥지?"하며 아침인사를 합니다. 처음엔 남측 주재원들이 허리를 숙여 진심을 다해 인사하는 모습에 멀뚱멀뚱 거리기도 하고 낯설어 하더니 며칠 지나고 몇 주일이 지나고 나니 우리의 진심이 느껴졌는지 먼저 인사하는 동무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서로 목례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해 지금과 같이 추운 한겨울, 기온은 영하 25도를 오르내리고 강한 눈보라에 몹시 추운 아침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은 허허벌판에 공단을 조성한 상황이라 서울에 비해 평균 5도 이상 기온이 낮았습니다.

정문인사

그러나 '아침 인사만은 포기할 수 없다'라는 신앙과 같은 신념으로 내복 두 벌에 다운 점퍼, 그리고 겨울등산이나 갈 때 신을 정도의 두터운 방한화와 머플러까지 완전 무장을 했지만 일부 드러난 볼과 눈가는 금방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내일은 이보다 더 춥다하니 정말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어 하루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오후 북측 간부가 슬쩍 다가와 "사장선생 정말 고맙습니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사실 '고맙습니다' 또는 '감사하다'라는 표현은 북측 직원들이 일반인에게는 잘 쓰질 않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최고지도자 이외에는 그런 경어를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다른 공장은 신원공장 따라한다고 아침인사를 흉내 내다 11월 찬바람 불기 시작하니 다 들어갔는데 우리 사장선생은 엄동설한에도 이렇게 우리 동무들을 맞이해 주어 고맙습니다."라며 인사를 해왔습니다. 그날 이런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면 다음날 정문에 나서지 않으려 했는데 그 이야길 듣고 나서 정문인사를 포기할 수 없었고 다음날도 어김없이 전날보다도 더 기쁜 마음으로 정문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후레쉬 충전소

어느 날 아침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재단반의 직원 얼굴에 큰 상처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측 재단실장에게 물어 봤더니 캄캄한 퇴근길 자전거를 타고 가다 울퉁불퉁한 땅바닥에 넘어져 얼굴에 상처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공업지구 밖 개성시내 간선도로, 골목길에 가로등이라는 것은 전혀 없어서 이런 부상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일반 가정에도 전기사정이 좋지 않아 하루에 전기공급은 한두 시간 정도 해 주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필수 지참물 중에 후레쉬는 꼭 들어 있어야 했는데 후레쉬의 공급은 물론 건전지 또한 공급이 제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이에 회사는 저들이 가지고 다니는 충전식 후레쉬라도 우리 공장에서 충전을 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여 공무실장에게 별도의 충전소 설치를 지시했고 반별로 돌아가며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간식시간 소시지

개성공단 내 대표적인 간식거리인 초코파이가 더 이상 간식으로서의 매력을 잃어 가는 시점에 고기류 등 지방과 단백질이 필요한 종업원의 요구에 맞는 간식거리 개발에 고심하던 중 우연히 진주햄 관계자의 공장방문을 계기로 소시지의 도입을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시범적으로 진주햄 천하장사 간식타임 소시지를 한 상자 들여와 생산총화(생산회의) 시간에 참석한 반장급 성원들에게 시식행사를 하였고 북한 당국의 승인을 받는 조건으로 시범적으로 도입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진주햄측은 남측 시중판매 가격의 1/4 수준으로 신원에 공급해 주기로 하여 단가 경쟁력은 확보되었으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남측 상표가 "간식타임"으로서 타임(time)이라는 영어가 표기되어 있고 제품표시란에 남측의 주소나 선전문구가 들어 있어 그 제품을 그대로 들여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포기해야 어쩌나 하다가 상표의 이미지가 촌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공장에 납품하는 소시지에 한하여 『간식시간』이란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고 상표이름과 유통기한, 제품 함유내용물 및 그에 따른 성분표시등 기본사항만 표기하고 주소나 기타 남측의 주소나 상업적인 문구들은 다 삭제하기로 하여 개성공단만을 위한 유일한 브랜드인 『간식시간』이란 소시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소시지로의 간식대체는 대성공이었고 신원만이 제공하는 간식류로서 가격대비 종업원의 만족도는 초코파이를 훨씬 능가하고도 남았습니다.

나무심기

공단 초기 개성공단 인근의 산등성이는 모두 붉은 흙 투성이었습니다. 가을이면 주민들이 모두 갈퀴를 들고 나와 낙엽이며 나무뿌리며 다 캐내어 불소시기감으로 사용하였고 공장에서 나오는 카튼박스(종이상자)는 더욱 좋은 땔감이었습니다. 이런 황량한 벌판과 산하를 보시던 신원의 회장님은 우리가 이 신원공장 주변만이라도 에덴동산 같이 푸르게 만들자고 말씀하시고 매년 약 500~600그루의 과실수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6년간 약 3천 그루 이상의 과실수가 공장 안팎을 뒤덮었고 가을이면 사과, 배, 살구, 포도, 자두 등의 과일이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북측 종업원들도 이러한 의도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조를 짜서 물주는 당번, 가꾸기 당번, 과일지키기 당번을 지정하고 정성스레 나무를 가꾸었습니다. 공단지역의 토질이 마사토였기 때문에 과실이 충실히 맺히지는 않았으나 때를 따라 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치고 정성스럽게 돌보아 가을이 되어 과일을 수확하게 되면 1/n의 배분 원리가 적용되어 종업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배급하였습니다.

나무심기

지금은 비록 가 볼 수 없는 개성공단이 되었지만 애써 가꾸었던 수천그루의 나무는 잘 자라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멀지 않은 훗날 다시 가서 성큼 자라난 나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개성공단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