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시즌 3 - 제 2 편

함경북도 무산군

북녘 끝자락,
무산에서 보낸 사계절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오래된 노래 한 구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내가 살던 고향은 북쪽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함경북도 무산이다.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30도를 훌쩍 넘기고,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가 극심한 곳이다. 무산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철광석 매장지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어린 시절 우리는 “무산광산은 나라의 보배”라는 김일성의 말을 학교에서 배웠고, 그 문구는 광산 입구에 크게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보배’라는 이름과 달리,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결코 풍요로운 곳이 아니었다.

여름에는 30도를 넘어 40도 가까이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는 혹독한 기후였다. 철광석 지대라 더울 때는 더 덥고, 추울 때는 더 춥다는 말을 할머니에게서 자주 들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20여 년을 살았지만, 사과나무 한 그루 본 적이 없다. 기후 탓에 대부분의 과일나무는 자라지 못했고,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나무라곤 살구나무가 거의 전부였다. 가끔 청 배나무나 왜지(자두나무)가 있을 뿐이었다. 벼농사는 거의 불가능해 주식은 옥수수와 감자였다. 고구마는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기억이 없다.

남쪽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풍경은 집집마다 있는 사과나무와 감나무였다. 너무도 흔한 과일나무와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린 열매들을 볼 때면, 자연스레 고향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곳 사람들도 이런 풍경을 알까, 이런 여유를 누려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산에는 <무산광산> 이라는 대형 노천광산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발파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어느 날은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에 놀라 걸음을 멈춘 적도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6·25 전쟁 장면과 똑같은 소리였다. 그러나 주변 어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부모님께 여쭤보니 “광산 발파 소리니 무서워할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 후로는 시꺼먼 연기가 하늘을 덮고, 귀를 찢는 소리가 울려 퍼져도 그것이 전쟁이 아님을 알기에 일상을 이어갔다. 아침마다 울리는 발파 소리는 싫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소리에도 깨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가족과 친척, 이웃들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 고향의 추억은 이곳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는 놀이공원이 아니라 늘 뒷산이었다. 지금도 그 곳의 사계절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면 진달래가 붉게 물든 산에서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꽃을 따다 아버지의 술에 담가 드리겠다며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그것이 우리의 효도라고 믿었다.

여름이면 집 앞 냇가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 수영복은 없었고, 입고 있던 옷이 그대로 수영복이었다. 튜브 대신 ‘빵깡’이라 부르던 물통 뚜껑이 전부였다. 냇물은 얕았고 돌이 많아 무릎이나 배를 긁혀 피가 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럼에도 여름은 가장 좋았다. 여름이 좋았던 이유는 언제든 씻을 수 있고, 빨래를 따뜻한 물에 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아버지의 자전거를 냇가에서 닦는 일이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타이어까지 반짝이게 닦아놓으면 흐뭇해하시던 아버지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집에 없으면 사람들은 늘 냇가에서 나를 찾았다. 그만큼 여름의 대부분을 물가에서 보냈다.

가을은 아주 짧았다. 갑작스러운 서리와 함께 옥수수와 채소가 얼어버리면,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 가을을 아쉬워하며 또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곤 했다.

겨울은 길고도 길었다. 내가 좋아하던 냇가는 꽁꽁 얼어 썰매와 외발기를 타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진짜 재미는 뒷산에 있었다. 골짜기로 흐르던 물이 얼어 만든 자연 썰매장은 경사가 가팔라 스릴이 있었고, 그 위험함마저 즐겼다. 겨울이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야 했다. 추운 날씨에 네 시간 넘게 걸어 들어가 나무를 베어 배낭에 지고 내려오는 일은 고된 노동이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일이었기에 피할 수 없었지만, 친구들과의 대화, 모닥불에 꽁꽁 언 주먹밥을 녹여 나눠 먹던 시간만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비록 늘 배는 차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사계절을 보내며 20여 년을 살았다.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계절 속에 살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의 차이다. 이제는 이 따뜻함과 여유가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살아온 사람처럼, 오히려 고향의 사계절이 몸서리쳐지게 느껴진다.

오늘도 그곳은 차갑고, 또 차갑겠지…. 아직도 차가운 땅에서 그 삶이 따뜻하다고 세상에 부럼(부러움) 없다며 행복하게 웃고 있을 내 이웃들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이곳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따뜻함과 여유, 풍요로운 사계절의 풍경을 언젠가는 함께 향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맺는다.

남녘의 끝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