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대화 재개 가능성과
리스크 요인
글. 국민대학교 글로벌평화·통일대학원
이수석 특임교수
현재 남북관계는 꽉 막혀있다. 북한은 남북대화엔 전혀 관심 없는 태도를 보이면서 대러, 대중관계에 몰두하고 있다. 한때 남북관계는 몇 차례 북미 및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해빙의 시기를 만끽했으나 북핵문제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대국의 이익정치에 따라 흔들렸다. 대화의 기간이 짧았기에 아쉬움은 컸다. 더구나 2023년 12월 8기 9차 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2국가’를 내세우면서 남북이 별개의 국가로 지내자고 했다. 남북관계 회복은 요원해 보였다. 남북이 통일보다는 각각의 다른 정치적 단위체인 국가로 살아가자는 북한의 2국가론은 한국사회에서 통일의 의미와 방향, 체제논쟁을 야기시켰다.
국제정세도 시시각각 변했다. 몇 년 전부터 발생한 미중경쟁과 미러 대립으로 인해 북한에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었다. 특히 북한군의 러우전쟁 참전으로 북한의 대외정책 운신의 폭은 넓어졌다. 북중 관계마저 개선되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중관계는 소원하다가 6년만인 2025년 9월에 상황은 변했다. 제80차 중국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면서 김정은의 첫 다자외교 무대 데뷔와 함께 북·중·러 정상의 3자 연대가 연출되었다.
작년부터 남북대화 재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긍정적 움직임은 간간이 있었다. 미국의 북미 정상회담 제의에 대해 북한의 조건부 대화 수용 표현이 대표적 사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갈등이 있다면 우리는 그 갈등을 북한과 함께 해결하게 될 것”(2025.6.27)이라 언급한 바 있으며, 동년 7월 김여정 부부장은 미국이 북한의 “불가역적 핵보유국 지위”을 인정하고 “핵을 보유한 두 국가”로서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했다. 이어 9월에 김정은 위원장도 비핵화 포기를 전제로 한 조건부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이는 조건이 맞는다면 언제든지 북미회담이 개최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북미관계는 미국의 북핵문제 접근 태도에 좌우된다. 현재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회담을 전제로 북미대화에 나서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정세 대전환을 위한 선제적 노력과 조치들이 이어진다면 남북대화 재개가능성은 높다. 올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미중관계 정상화에 진전이 발생한다면, 북미 간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만일 북미 대화를 통해 대북제재 및 비핵화와 관련된 긍정적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남북대화 역시 재개될 수 있다. 그렇기에 2026년 1월 초 이뤄진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후속 조치들이 실행되어야 한다. 중국의 대북 경제적 영향력을 활용하여 대화를 견인할 수 있는 국면을 만들 수도 있다. 또한 러우전쟁의 종결로 미국과 러시아가 관계를 회복하고, 북한군의 러시아 철수가 이루어지면, 북미협상의 재개와 함께 남북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남북대화를 재개하는데 리스크 요인도 있다. 첫째는 우리와 상대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이다. 북한의 ‘2국가’ 선언 의도는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평화적인 2개의 별개 국가가 아니라, 적대적 2개 국가를 의미한다. 대한민국과는 협력할 의사가 없고, 별개의 국가로 언제든지 도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각종 대남기구와 남북 합의사항들을 폐지 및 삭제했다. 통일전선부, 6.15공동선언실천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련합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관련 단체와 북남경제협력법 등 관련법들을 폐지했다. 그리고 각종 통일·민족 상징물 및 사이트를 삭제했다.
2월 19일 개막된 9차 노동당 대회에서 북한은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여 통일 삭제와 ‘2국가’ 규정을 명문화하여, 그동안 통일을 위해 추진해 왔던 교류 협력 등 남북 관계의 주요 분야에 대한 단절을 법적, 제도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당 대회는 북한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향후 5년간의 대내외 정책 노선을 선포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9차 당대회에서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으며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면서 적대적 2국가론을 강화했다. 또한 “대외적으로 보아도 국가의 지위를 불가역적으로 굳건히 다짐으로써 세계 정치 구도와 우리 국가에 미치는 영향 관계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고 선언했다. ‘불가역적 국가의 지위’라는 표현에는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는 인식이 내재해 있다. 또한 김정은 총비서 재추대 결정문에서 "역사의 준엄한 도전 속에서도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나라의 전쟁 억제력이 비약적으로 제고“되었다고 자평했다. 이와 같이 북한의 핵무력 보유국의 선언, 대남적대정책의 규범화 및 정책화가 가장 큰 리스크라고 볼 수 있다.
둘째는 북중러와 한미일간의 진영대결이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핵무력을 완성하고 북러관계 밀착, 북중러 삼각협력 등으로 북한은 한반도정세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형성은 북한이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기여한다. 북중러 협력강화로 북한은 한반도에서 신냉전질서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이런 북방삼각협력은 한미일간의 외교, 군사협력의 강화를 초래하여 진영대결을 격화시킬 수 있다. 동북아정세에서의 새로운 진영대결은 남북관계를 언제든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이재명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반도 평화공존과 남북대화를 복원시킬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재명정부는 남북대화와 협력을 위한 많은 제안을 해왔다. 기존의 단절과 압박정책보다는 한반도 평화공존이라는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북한이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2개 적대국가론을 되풀이할 뿐이다. 이런 북한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은 흡수통일 배제, 단계적 접근, 국제협력 등 온건하고 균형잡힌 기조로 ‘평화적 2국가’를 추진하고 있으며 신뢰회복과 평화정착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
북한의 적대적인 대남정책을 우호적인 정책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민간 중심의 남북 교류협력 재개, 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 및 우발적 충돌 방지 등 단계적으로 신뢰를 조성할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재정립을 위해서는 북한의 대남불신과 주변 위협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통일을 부정한 북한에게 ‘남북한 평화공존적 체제’ 수립이야말로 현재 실행가능한 목표이자 대안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이재명 정부에 대한 북한의 비난이 이전과 비교했을 때, 많이 줄어들고 그 수위도 제한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9차 당대회에서 부장으로 임명된 김여정은 지난 2월 19일 발표한 담화에서 “통일부 장관이 우리 영공을 침범한 무인기 도발 행위를 공식 인정하고, 유감과 재발방지 의지를 표명한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북 대화의지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월 18일 민간인의 대북무인기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을 포함한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복원을 선제적으로 검토·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체결된 것으로, 남북이 지상·해상·공중에서 군사적 적대 행위를 전면 중단하기로 한 약속이다. 지난 2월 13일에도 김여정 부장은 통일부 장관의 유감 표명에 대해 “비교적 상식적인 행동”이라고 평가하면서 우호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남북관계에서 청신호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중관계와 북미관계에서의 진전이 발생하면 북한도 전향적인 대남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올해는 남북대화와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여정이 새롭게 펼쳐질 한 해로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을 평화적 2국가론으로 전환시키는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북미대화 재개가 남북 대화 및 남북관계 개선·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북한이 ‘대남적대 노선, 2국가’를 주장하면서, 민족과 통일을 지워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흔들림 없이 한반도 평화공존을 실현하고 남북대화를 복원하기 위한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