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 이야기
글·사진.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엄주현 사무처장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결성식(1997.06.)
(사)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이하 지원본부)의 시작은 1997년에 결성된 임의단체인 ‘북한어린이살리기의약품지원본부’였습니다. 1995년 북측이 국제사회에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자, 이듬해 남측 보건의료인들은 북녘 어린이의 아픔 해결에 동참하고자 마음을 모았습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등이 뜻을 함께 했습니다. 당시에는 북측에 직접 전달할 통로가 없어 우회로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캠페인으로 모금한 후원금을 유니세프(UNICEF)에 전달했습니다.
본부 창립 1주년 기념식 및 남북어린이사랑
방북진료단 추진위원회 결성식(1998.07.)
남측 보건의료인들은 직접 북녘 아이들을 진료할 꿈도 꿨습니다. 1998년 ‘남북어린이사랑 방북진료단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많은 보건의료인이 동참했지만, 의료인보다 의약품이 더 시급하다는 북측 의사에 따라 방북 진료는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 해인 1999년에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로 구성된 4명의 보건의료인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해 현지 의료진과 환자, 어린이 등을 직접 만났습니다. 이 방문이 지원본부의 역사적인 제1차 방북으로 기록됩니다.
사단법인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창립(2001.06.)
이후 지원본부는 한반도 평화와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 2001년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어느덧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동안 지원본부는 평양의 의학과학원 산하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 대동강구역인민병원, 철도성병원 및 철도위생방역소,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등에서 협력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2001년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에 지원한
정제 의약품 생산설비로
남북 제약 전문가들이
의약품을 시험 생산한 모습(2002.01.)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 정제 설비를 활용해
비타민 영양제 생산한 모습(2007.03.)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 사업은 초기에 완제의약품과 영양제 등을 북측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2001년부터는 의약품 생산설비와 원료의약품을 지원해 북측이 스스로 의약품을 생산하는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2007년 3월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비타민 원료로 북한 어린이들에게 공급할 비타민 영양제를 생산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동강구역인민병원 수술실에 기증한
의료기구 관련 기술이전 모습(2004.05.)
대동강구역인민병원의 호담당의사와의
면담 모습(2004.05.)
대동강구역인민병원
호담당의사들에게 전달한 왕진가방
2004년부터 교류·협력을 시작한 대동강구역인민병원에는 어린이와 산모를 위한 의료 장비와 의료용품을 우선 지원했고 호담당의사들에게 필수적인 왕진가방을 기증했습니다. 왕진가방은 이후 추가 지원을 요청받을 정도로 큰 호응을 받은 물자였습니다.
철도성병원에 기증한 디지털 엑스레이
기술이전을 마치고
북측 환자를 대상으로
테스트하는 모습(2006.07.)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철도성병원
엑스레이실 모습(2007.01.)
철도성병원 사업을 마감하며
100여 명의 대규모 방문(2007.11.)
지원본부가 세 번째로 맡은 철도성병원은 더 특별했습니다. 대동강구역인민병원과 달리 병원 건물의 리모델링까지 추진했습니다. 철도성병원은 기존의 회색에서 녹색으로 탈바꿈했고 이후 평양에 녹색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는 북측 담당 참사들의 자랑 아닌 자랑을 듣기도 했습니다. 또한 디지털 엑스레이를 지원했습니다. 의료 장비 기증에 동반해 고민하게 되는 ‘지속적인 소모품 지원의 해소 방안’이자 이미 남한에 보편화된 디지털 엑스레이를 북측에 소개하는 차원의 활동이었습니다. 이 디지털 엑스레이가 북한에 엄청난 반향이 있었음은 몇 년 뒤, 탈북 보건의료인을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함경북도 출신인 의사는 탈북 전 디지털 엑스레이를 보기 위해 철도성병원을 참관했고 당시 본인뿐 아니라 많은 보건의료인이 병원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물론 지원본부에서 기증한 사실은 듣지 못했으나 선진 의료 장비로 선전되며 북한 전역의 보건의료인들에게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철도성병원 사업을 마감하면서 지원본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려항공 전세기로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100여 명이 대규모 방북을 했습니다. 방문단은 새롭게 변신한 철도성병원을 직접 확인하는 동시에 북한의 대표적 참관지 중 하나인 묘향산을 등반하며 북한의 절경을 경험했습니다.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건물 공사 이후
진행한 남북 보건의료간담회(2008.10.)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건물 공사 이후
진행한 남북 보건의료간담회(2008.10.)
2007년 철도성병원 대규모 방북 당시 지원본부의 임원진은 2008년부터 새롭게 맡을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공사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은 병원을 새롭게 건설하는 사업으로 규모가 크지 않던 지원본부로서는 큰 도전적 과제였습니다. 북측은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개원 이후 다시 전세기를 띄워 백두산을 등반하자고 약속했지만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병원 건물은 1년도 안 돼 완공됐고 2008년 10월 각 과에 들어갈 의료 설비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보건의료인 간담회를 평양에서 진행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현수막이 2종류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북측의 요청에 따른 결과로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에서는 간담회가 빠진 ‘후원자 방문’ 현수막만 펼칠 수 있었습니다. 실제 ‘간담회’ 현수막은 평양비행장에서 내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경색되기 시작한 남북 관계의 한 단면이라 하겠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같은 해 금강산 관광객의 피격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9년에는 북한이 2차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천안함 사태로 한국의 독자 제재인 5·24 조치가 결정되며 남북 교류·협력이 중단됩니다.
그 과정에서 공사가 끝난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에 어린이 환자를 진단 및 치료할 수 있는 의료용품의 반출이 막히게 됩니다. 지원본부는 이미 2009년부터 물자 반출을 위해 통일부에 반출신청을 한 뒤 관련 의료 설비를 인천항 창고에 입고한 상태였습니다. 물자 반출을 위해 노력한 결과, 통일부는 인천항에 있는 물자에 한해 반출 승인을 했고 2010년 2월과 3월에 걸쳐 소아과, 검사실, 고려과, 안과, 이비인후과, 치과 등의 물자를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몇 개월만 늦었어도 5·24조치로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개원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의료 설비 반출 이후 2010년 5월 5일부터 8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기술이전을 했고 다시 평양을 방문하기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2013년 8월 평양 방문 이후 다시 5년 뒤인 2018년 11월에 평양을 방문해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에 입원한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평양 방문을 끝으로 8년이 지난 현재까지 다시 방북할 기약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완공 모습(2009.09.)
북측 보건성 치료사업국 부국장 등
보건성 관료 면담(2018.11.)
저는 당시 남북 교류·협력의 비정상적인 상황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남북 관계의 심각성을 간과한 너무 안일한 인식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돌이켜보면 북측의 요청으로 인도적 지원을 시작한 1996년부터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던 2008년까지 10여 년의 기간이 특수하고 비정상적인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운 좋게 특별한 경험을 한 민간교류의 활동가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본 전제 조건은 남북 교류·협력의 재개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한반도 정세와 국제적 환경이 많이 변한 것도 사실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려운 고비가 많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5년 만인 2018년에 지원본부가 민간단체 단독으로 첫 평양 방문을 했던 이유는 북측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필요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제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오랜 기간 만나기를 요청했던 북측 보건의료 담당 기관인 보건성 관료들도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북 교류·협력의 재개를 위해 노력하는 정부와 민간단체가 존재하는 한, 남북은 곧 다시 만날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