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2026 호주 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

남·북한 선수단
공동응원의 현장

글·사진. 이조영 MK글로벌 이사

(2026 호주 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
남·북한 선수단 공동응원단 참여)

2026 호주 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 남한 선수단
응원 현장(3월 8일, 초상권 문제로 AI 활용)

스포츠는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물론 응원하는 관중까지 모든 참여자에게 '우리는 하나, 한 팀'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머나먼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 느끼는 동질감과 감동은 훨씬 더 큽니다. 선수들은 해외동포들의 응원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풀리고, 선수들을 응원하는 동포들은 고국에 대한 뜨거운 애국심으로 하나가 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남북이 분단된 우리 동포들은 남·북한의 경기에서 분단의 슬픔과 통일에 대한 염원도 간절히 느끼게 됩니다. 전에 없이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 진행된 지난 3월 호주 AFC 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 공동응원은 그런 감동과 염원이 훨씬 더 크고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남북이 스포츠를 통해 감동을 준 가장 대표적인 경험은 1991년 제41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이 당시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우승했던 기억일 것입니다.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단일팀 출전은 남북한 사회는 물론 일본 현지의 민단과 조총련 교포사회에 뜨거운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회 공동응원을 준비하며 남북한과 교포사회에는 하나의 작은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제41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환영하는 동포
(노동신문 1991년 4월 25일 기사)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C풀대회
(호주 개최) 남·북한 선수단 공동응원
(한겨레 신문 1989년 3월 23일 기사)

그런데 이번 호주 AFC 아시안컵 여자축구 응원을 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이보다 훨씬 이전에 국제 대회에 참가한 남북한 선수들을 응원하며 동포 사회가 하나가 된 곳이 있었습니다. 1989년 3월 21일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 경기장에는 세계아이스하키선수권 C풀 대회 4일째 경기로 남북한 경기가 열렸습니다. 경기는 7대4로 북한이 승리하였지만, 이날 경기장은 어느 한쪽의 승패를 떠나 같은 민족으로서 얼싸안고 ‘아리랑’을 합창하며 분단을 뛰어넘는 감격적인 민족의 대합창이 울려 퍼졌습니다. 호주의 텔레비전 방송도 남북이 하나 되어 손에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부르며 경기장을 도는 광경을 감동어린 설명과 함께 오랫동안 방송했다고 합니다.

이날 교민들은 경기 초반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태극기를 내려놓는 수가 늘어났고, 전반이 끝나기 전에 태극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리랑, 아리랑 목동 등을 부르며 남과 북 누가 득점해도 박수로 격려하며 남북한 모두를 응원하였습니다. 심지어 경기가 끝나고 북한 국기가 게양될 때 교민 모두가 일제히 기립하여 박수를 쳤고, 북한 선수단 단장이 남한 교민들에게 "우리가 이겨서 미안하다고"고 인사하자, 남한 선수단 단장도 "멋진 경기였다"며 화답하였습니다. 남북한 경기에서 불상사를 우려하여 교민사회에 협조 공문까지 보냈던 호주 아이스하키연맹 위원장이 민망해하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교민들의 공동응원은 22일 남한과 호주, 26일 북한과 호주 경기도 뜨겁게 응원하였는데, 당시 대회가 개최된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드니 한인 사회에 동포 청년들이 발 벗고 나서 경기를 알리며 공동응원 참가를 독려하고 한인회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한 결과였다고 합니다.

이후 호주 시드니에서는 남북 정상의 6·15 선언 이후 또 한 번 감동적인 남북 스포츠 교류 역사가 만들어졌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공동입장이 그것입니다. 남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손에 손을 잡고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깃발을 들고 시드니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에 공동입장하며 같은 민족이라는 뜨거운 감동과 통일에 대한 희망을 키웠습니다. 또한 남북의 공동 입장은 세계 각국에 생중계되어 한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흥분과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호주 교민들은 자발적으로 남북 공동응원을 펼쳐 민족 화합의 장으로 만든 것은 물론이고 시드니올림픽을 지구촌 평화와 화합의 축제로 만들었습니다.

스포츠로 남북이 극적으로 화합했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기억이 아직도 우리에게는 생생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2019년 이후 모든 남북관계는 단절되고 냉각되었습니다.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의 결렬로 인한 남북, 북미 관계의 단절 이후 남북 대화는 중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경색 국면은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어야 개선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신과 단절의 골이 깊고 시간도 긴 만큼 단기간에 몇 마디 말이나 선언으로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정치, 경제, 군사적인 분야보다는 스포츠와 같이 비정치적인 분야의 교류를 통해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며 화합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스포츠조차도 남북 직접 교류가 어려운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스포츠는 다양한 종목의 국제 대회가 항상 꾸준히 진행됩니다. 그래서 우선은 남북이 모두 참가하는 국제 대회에서 기회를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스포츠는 참여자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며 정해진 규범과 규칙에 따라야 합니다. 북한이 남한과 대화의 문을 닫더라도 국제 대회에서의 만남은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스포츠가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국제 대회의 기회를 현명하게 활용하고, 민간이 나서 해외동포들과 힘을 합하면 스포츠를 통해 남북 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트고 꺼져가는 민족공동체 의식을 다시 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통해 불신을 극복하고 신뢰를 쌓아가야 할 것입니다.

2026 호주 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
남한 선수단 응원 현장 (AI 활용 이미지)

경기 후 응원단 쪽으로 인사하는 남한 선수단

지난 3월 9일 호주 시드니 파라마타의 웨스턴 시드니 스타디움에서는 경기장을 가득 메운 중국 응원단에 맞서 비록 적은 수였지만 호주 교민과 한국에서 달려간 응원단이 목이 터지도록 북한 여자축구팀을 응원하였습니다. AFC 여자축구 아시안컵 B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로 북한과 중국이 조 1위를 놓고 치열한 승부를 펼치는 현장이었습니다. 이날 함께한 호주 동포 응원단은 아시안컵에 남북한이 모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1989년의 감동을 기억하는 분들이 먼저 모여 2026년 1월부터 응원단 구성을 준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동포응원단은 수차례 협의를 거쳐 응원단 이름을 바꿀 정도로 보수와 진보 모든 동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민간단체가 나서 자발적으로 구성한 한국 응원단이 합류하여 3월 8일 남한 경기와 9일 북한 경기를 함께 응원했습니다. 남과 북 그리고 호주 동포는 다시 한 번 스포츠로 하나가 되며, 남북이 한겨레라는 뜨거운 감동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2026 호주 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
북한 선수단 응원 현장 (AI 활용 이미지)

2026 호주 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
북한 선수단 응원 현장 (AI 활용 이미지)

공동응원을 준비하며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북한 경기 응원에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남북관계 현실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 공동응원의 상징이었던 한반도기를 들지 않기로 결정할 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모두 흔쾌히 마음을 비우고 파란 막대풍선을 들었습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작은 바늘구멍이라도 내어 하루빨리 평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를 살리고, 경기에 임하는 북한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압도적인 중국 응원단에 맞서 북과 징, 꽹과리, 막대풍선을 들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였지만, 아쉽게 경기에 패한 북한 선수들은 보기에도 안쓰러웠습니다. 선수들이 북한 국기를 들고 응원하던 쪽에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순간, 전날 한국 선수들이 호주와 경기 후에 즐겁게 응원석 앞에 다가와 인사하고 함께 사진 촬영하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북한 vs 중국 여자축구 경기

첫 골을 넣고 기뻐하는 북한 선수들

경기 후 응원단 쪽으로 인사하는 북한 선수단

벤치로 들어가는 북한 선수들에게 들리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우리 쪽으로 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벤치로 향하던 북한 선수들이 그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우리 응원석을 향해 다가오며 손을 흔들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였습니다. 역시 우리는 한겨레, 같은 동포라는 생각과 함께 호주까지 와서 응원한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함께 응원한 교민들도 북한 선수들에게 기죽지 말고 더욱 힘내라며 격려하였고, 얼어붙은 남북 관계도 이렇게 풀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스포츠로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가 하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북한 선수들이 우리 응원단에게 인사를 보내온 것은 호주 동포들의 자발적이고 진정어린 지원과 응원에 감사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정성과 마음이 모여 얼어붙은 남북관계 속에서도 서로가 하나라는 동질감을 느끼고 신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가을에는 일본 나고야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립니다. 35년 전 탁구 단일팀 응원을 위해 작은 통일이 이루어졌듯이 다가오는 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남과 북 그리고 동포 사회가 한마음으로 작은 통일을 이루어 남북관계가 '적대'에서 '평화'로 전환되는 돌파구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 본지에 실린 내용은 기고자 개인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