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사업' 이야기
"인천항에서 남포항,
그리고 평양까지"
시간을 거슬러 19년 전인 2007년, 남북교류협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지원 중심 사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측의 경공업 원자재와 북측의 지하자원을 연계한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입니다. 이 사업은 우리측이 섬유, 신발, 비누 생산 등에 필요한 약 8천만 달러 상당의 94개 품목 경공업 원자재를 26항차에 걸쳐 북측에 제공하고, 북측은 지하자원 개발협력과 대가상환으로 호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남북이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상호 호혜적 협력의 틀을 실제로 구현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글. 고재길 대진대학교 교수
(前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부장 /
'남북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사업' 담당)
당시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는 북측과의 실무 협의, 물품 조달, 인도 및 현장 확인, 기술지원, 대가상환 협상, 상환물 반입과 정산에 이르기까지 사업 전반의 실무를 담당하였습니다. 조달청을 통한 원자재 구매, 반출 관련 절차 검토, 복잡한 물류 관리, 북측 생산현장 점검 등 남북 경협의 여러 실무가 집약된 대규모 사업이었습니다. 필자 또한 협회 실무자로서 경공업 원자재 제공, 기술지원단 방북, 생산현장 확인 등의 업무를 맡아 사업 이행 과정을 가까이에서 경험하였습니다.
- 경공업원자재 1항차 출항
- 경공업 원자재 출항
이 사업의 본격적인 출발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준 것은 남북 합의에 따른 첫 인도물량의 인천항 출항이었습니다. ‘경공업 원자재 1항차 출항’은 문서상 합의가 실제 이행으로 전환된 시점을 뜻하는 동시에, 협회가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실무가 처음으로 구체화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선적 이전의 품목 및 수량 점검, 생산 및 납품 일정 조율, 북측과의 인도 절차 협의, 현지 수송과 하역에 이르기까지 여러 제반 사항이 정교하게 맞물려야 비로소 한 항차가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 경공업원자재 인도
인천-남포간 정기선 트레이포춘 호
남북 협력사업은 선언 그 자체보다 합의사항을 실제로 이행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였고, 그 성패는 세부 절차를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항 출항은 협회가 맡은 실무의 성격과 무게를 함축적으로 드러낸 출발점이었습니다.
- 북한 남포항 갑문 전경
- 경공업 원자재 남포항 하역 장면
이후 북측 남포항에서 이루어진 인도·인수 협의와 하역 작업은 남북 경제협력이 매우 구체적인 절차와 책임 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물품 하나, 문서 하나, 인수 확인 하나가 모두 사업 이행의 일부였고, 그러한 절차의 축적은 곧 상호 신뢰와 연결되었습니다. 당시 협회가 수행한 업무는 단순한 전달 행정이 아니라, 긴장감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현장 관리와 절차 이행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협회가 중요하게 보았던 것은 제공된 원자재가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는지를 점검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술지원단 방북과 생산현장 확인은 부수적인 일정이 아니라 사업 운영의 핵심 요소로 자리하였습니다.
- 경공업 기술지원단의 북한방문(신발공장)
- 북한 섬유공장 생산라인
북측의 신발공장과 섬유공장, 비누생산공장 등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우리측이 제공한 원자재가 실제 생산공정에 투입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측 기술지원단이 북측 노동자들과 함께 기계설비 앞에서 생산공정을 협의하던 모습은 지금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측 원자재로 제작된 신발 샘플을 세심하게 살피던 북측 관계자들의 태도에서도 사업에 대한 진지함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 북한 비누생산공장 포장 작업 장면
비누공장의 포장 라인과 섬유공장의 생산현장은 남북경협이 단지 관념적 구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기술지원단의 방북과 공장 방문은 협회가 사업의 실효성을 직접 확인하고 필요한 협의를 이어가는 중요한 통로였으며, 이 사업이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점검과 협의를 바탕으로 운영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 북한 검덕3 선광장 현장조사
- 북한 철도(금골역) 현장조사
- 북한산 광물 시료 도착
- 경공업원자재 대가상환 북한산 아연괴 샘플
이 사업의 또 다른 특징은 '경공업'과 '지하자원 개발협력'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맞물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협회가 추진한 사업의 흐름 속에는 항만과 공장뿐 아니라 광물 시료, 선광장, 도로, 철도, 항만 점검, 그리고 대가상환 광물 반입과 같은 요소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대가상환으로 북한산 아연괴가 인천항에 도착한 일은 이 사업이 일방적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일정한 순환 구조를 갖춘 협력사업이었음을 잘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인천항에 반입된 북한산 아연괴는 실무 담당자로서도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초기 상환물량으로 도착한 약 240만 달러 규모의 아연괴는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남북이 합의한 내용을 실제로 이행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 하나의 징표였습니다.
- 1차 경공업원자재 대가상환 북한광물(아연괴)
인천항 도착
- 2차 경공업원자재 대가상환 북한광물(아연괴)
인천항 도착
당시 협회가 수행한 실무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신뢰와 책임, 그리고 이행의 정확성이었습니다. 남북 간에 오가는 물자와 정보는 정확하게 관리되어야 했고, 약속된 절차는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했으며, 동시에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남북교류협력 업무는 일반적인 행정업무와 달리 정치·군사적 상황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절차 하나도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현장 확인, 문서 관리, 일정 조율, 관계기관 협의는 모두 사업의 신뢰를 떠받치는 핵심 기반이었습니다. 협력사업의 성패는 결국 약속된 물자가 제때 도착하고, 그것이 계획된 생산으로 이어지며, 그 결과가 다시 신뢰로 축적되는지에 달려 있었습니다.
- 남측 제공 원자재로 북한에서 생산한 신발샘플
이 글을 준비하며 다시 당시의 사진들을 돌아보니 이 사업은 단지 과거의 한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남북이 실제로 협력의 구조를 만들고 움직여 보았던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인천항에서의 출항, 남포항에서의 인도·인수와 하역, 우리측 기술지원단의 방북과 북측 생산현장 점검, 그리고 대가상환 광물의 반입까지 이어졌던 흐름은 남북 간 경제협력이 추상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 북한 아연괴 하역 장면
비록 지금은 그때와 같은 방식의 협력이 중단되어 있지만, 당시 협회가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과 역량은 앞으로 남북관계를 다시 풀어가고 새로운 교류협력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의미 있는 자산이 될 것입니다. 남포항과 평양의 현장에서 쌓인 약속과 신뢰의 기억이 언젠가 다시 이어져 보다 성숙한 한반도 경제협력의 흐름으로 발전해 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 본지에 실린 내용은 기고자 개인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