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서 온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과
가장 뜨거웠던 경기
글·사진. 정일영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
에이 설마.. 설마, 오겠어?
- 20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
(수원FC위민vs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 경기 현장
(초상권 문제로 AI 활용)
설마설마하던, 그 일이 정말 일어났다. 꽁꽁 얼어붙은 한반도에서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이었다. 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이 '2025-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참가를 위해 한국 땅을 밟은 것이다. 이 글은 세상에서 가장 뜨거웠던 만남,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과 수원FC위민의 경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손님맞이
어쩌면 운명적인 만남이었을까? 남북 여자축구 클럽팀 간 경기는 여러 경우의 수가 모두 맞춰진 결과였다. 경우의 수는 수원FC위민이 8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우한장다WFC(중국)를 4-0으로 대파하며 시작됐다.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과 결승전 경기는 4강전 진출팀이 소속된 도시에서 개최된다.
사전에 준결승리그 개최지 신청을 해놓았던 수원은 수원FC위민이 준결승에 진출하며 개최지로 선정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이 호찌민시티위민FC(베트남)를 이기고 준결승에 진출하며 남북 여자축구 클럽팀 간 대결이 수원에서 성사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3월 말의 며칠 사이에 이뤄졌다.
하지만 마지막 퍼즐이 남아 있었다. 대진은 짜여졌고 무대는 마련됐지만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이 정말 한국에 올지 불분명했다.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은 2024-25 챔피언스리그에도 불참한 전력이 있었다. 더 현실적인 이유는 북한의 대남 강경 정책에 있었다. 지난 2월과 3월 북한이 제9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소위 '적대적 두 국가'를 강조하고 헌법에 반영한 터라 내고향의 한국 방문은 불가능할 것이란 예상이 더 많았다. 그렇게 설마설마하던 내고향의 한국 방문이 5월 초 대한축구협회에 통보됐다. 수원과 내고향의 준결승전이 열리기 보름 전의 일이다.
- 20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
(수원FC위민vs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
공동응원 현장 (초상권 문제로 AI 활용)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시민사회가 먼저 움직였다. 지난 2월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에 남북공동응원단을 파견했던 경험을 살려 수원FC위민과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을 함께 응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2026 AFC-AWCL 여자축구 공동응원단(단장 정욱식)'이 결성됐다.
공동응원단에는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시민평화포럼, 자주평화통일연대, 그리고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등 200여 개 단체들이 함께 힘을 모았다.
폭우 속 식지 않던
수원종합운동장
5월 17일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이 입국하며 대회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비인기 종목으로 취급받던 여자축구에 전에 없던 국민의 관심이 쏟아졌다. 5월 20일 수원FC위민과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의 준결승전 입장권은 12시간만에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그렇게 5월 20일이 다가왔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남북을 하늘도 시샘한 것일까? 경기 당일 수원종합운동장에는 비가 내렸다. 오락가락하던 봄비는 경기가 시작하자 70mm의 폭우로 변해 경기장을 적셨다. 체감온도도 낮아지며 추위를 느낄만한 날씨였다. 하지만 경기장에는 5살 어린아이부터 90세 실향민 어르신까지 자리를 잡았다. 폭우 속에서 북향민들의 흥분된 이북 사투리가 들려왔다.
- 20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
(수원FC위민vs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
공동응원 현장 (초상권 문제로 AI 활용)
심판의 경기 시작 휘슬이 울려 퍼졌다. 선수들이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경기장을 누볐다. 내 심장도 그들과 함께 쿵쾅댔다. 응원단이 수원과 내고향을 번갈아 응원했다. '수원 이겨라', '내고향 이겨라'... "어떻게 두 팀을 다 응원하냐"는 질문에 "내 두 딸이 운동회에서 청군과 백군으로 뛰었을 때도 같은 마음으로 응원했다"는 선배님의 말이 떠올랐다. 두 딸이 다치지 않고, 즐기는 축제가 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이었다.
수원이 1-0으로 앞서갔다. 하지만 내고향이 연달아 골을 넣으며 2-1로 역전, 그렇게 경기는 막바지로 치달았다. 이대로 경기가 마무리되나 했던 그 순간, 내고향 패널티구역에서 휘슬이 울렸다. 패널티킥이 선언되고 수원에게 동점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지소연 선수가 슛을 찼다. 아! 킥이 골대를 빗나갔다. '아~'하는 탄식 소리가 공동응원단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그리고 뜨거웠던, 아주 특별했던 그 날의 경기는 그렇게 내고향의 승리로 끝이 났다.
- 20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
(수원FC위민vs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
공동응원 현장 (초상권 문제로 AI 활용)
남북대화가 중단된 지도 7년이 훌쩍 넘었다. 남북관계가 어려운 만큼 온전히 스포츠 경기로 응원하자 다짐했지만, 역시나 마음은 요동쳤고 그만큼 복잡했다. 왜 북한 클럽팀을 응원하냐는 비판에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 탈 없이 경기가 치러지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으리라.
남북 스포츠 교류가
계속되길 바라며
최근 발표된 통일연구원의 '2025 통일인식조사'에 따르면, 남북 간 스포츠 교류에 '찬성한다'는 우리 국민이 67.2%로, '반대한다'는 응답 13.3%보다 높게 나타났다. 남북 간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스포츠 교류를 지지하고 있다.
- 20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vs도쿄베르디벨레자)
공동응원 현장 (초상권 문제로 AI 활용)
하지만 현실은 좀 더 복잡하다. 스포츠는 승패를 겨루는 게임이다. 남북관계가 좋아도 조심스러운데, 지금처럼 북한이 적대감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편히 응원하기란 쉽지 않다. 남북 경기에서 한국을 응원하는 것이 당연하고 남북을 함께 응원한다는 것은 이상하며 북한을 응원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 20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vs도쿄베르디벨레자)
시상식 현장 (초상권 문제로 AI 활용)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이 한국에 머문 일주일은 지금의 남북관계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하지만 바늘구멍도 찾지 못했던 남북관계에 소득도 있었다. 북한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관계'가 모든 것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비정치' 분야의 '국제관계(대회)'에서 남북 간 접촉을 거부할 이유가 없으며, 필요하다면 한국도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 20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시상식 후
내고향여자축구선수단 퇴장 현장
(초상권 문제로 AI 활용)
우리는 그렇게 얼어붙은 한반도에서 작지만 큰 한 걸음을 내디뎠다. 얼굴을 맞대고 경기장에서 함께 뛰었다. 여전히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앞장서 성숙한 모습으로 공동응원을 펼쳤다. 짧은 준비 기간 속에 공동응원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아쉽지만 부족했던 점은 보완해 다음 경기를 기약해 보자.
남북 스포츠 경기는 앞으로도 계속 열릴 것이다. 북한 선수들이 다시 한국에 올 때, 그리고 우리 선수들이 북한을 방문해 경기를 치르게 된다면, 그들을 좀 더 따뜻하게 맞이해 주길, 좀 더 편히 응원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 본지에 실린 내용은 기고자 개인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