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가 남긴 땅,
온실이 된 섬
북한 수해 복구와
신의주 온실종합농장 건설
2024년 여름, 압록강이 넘쳤다. 그것도 60년 만에 최대 규모로. 평안북도 신의주의 위화도와 의주 일대는 삽시간에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았고, 그곳에서 살아가던 수만 명의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압록강 하구에서 농사를 지으며 이어가던 일상이 하룻밤 사이에 재난이 됐다. 이 글은 그 재난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모습으로 복구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 복구의 상징으로 들어선 신의주 온실종합농장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함께 짚어본다.
글·사진. 최현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KISTI) 전문위원/ 북한ICT연구회 회장
신의주 홍수 (AI 활용 이미지)
2024년 압록강 대홍수,
60년 만의 재앙
2024년 7월 25일부터 28일 사이, 평안북도와 자강도를 가로지르는 압록강 유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사흘 남짓 동안 천마군에 635mm, 운산군에 642mm, 자강도 송원군에 554mm의 비가 내렸다. 해당 지역 연평균 강수량의 절반에 가까운 양이 단 며칠 만에 퍼부어진 것이다.
태풍 '개미'가 몰고 온 수증기가 정체전선과 맞부딪히면서 압록강 상류에 폭우를 집중시켰다. 문제는 북한 측 제방이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 단둥 쪽 제방이 2.5m 높이의 견고한 방벽을 갖춘 반면, 북한 쪽 제방은 흙으로 쌓은 1m 남짓의 낮은 둑에 불과했다. 결국 압록강은 위화도와 신의주 시가지로 쏟아져 들어왔고, 여의도 면적의 수십 배에 달하는 지역이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신의주시에서만 4,100여 세대의 주택이 침수됐다.
피해는 엄청났다. 통일부 추정에 따르면 평안북도에서만 1,100명에서 1,5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자강도에서는 2,500명에 달하는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북한 당국이 공식으로 인정한 이재민 수만 15,400명이었다. 신의주 주민 30여만 명 중 상당수가 대피 명령을 받았고, 수돗물 공급은 끊겼으며 정수장까지 침수 피해를 입었다. 재난은 단순히 집이 물에 잠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이동하는 것, 모든 일상이 한꺼번에 멈췄다.
북한의 재난 복구,
자력갱생의 논리와 그 한계
재난이 발생하자 국제사회는 즉각 손을 내밀었다. 한국 정부는 비상식량과 의약품 지원 의사를 타진했고, 유니세프와 국제적십자도 구호물자 제공을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 '자력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북한 당국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심지어 중국이 위화도 등에 고립된 북한 섬 지역 주민들을 일시 대피시키겠다고 제안했을 때도, 북한은 탈북 발생 가능성을 이유로 거부했다. 빠른 구조보다 체제 유지를 앞세웠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복구는 그러나 무너진 둑을 다시 쌓고 집을 짓는 데 그쳤던 과거 방식에서 한 걸음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침수 위험이 높은 저지대 주민들을 안전한 고지대로 이주시키고, 강변 토지 이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구조적 복구에 무게를 둔 것이다. 기후변화로 재난의 규모가 커지고 빈도가 잦아지는 현실 앞에서, 버티는 방식 대신 체질을 바꾸는 방향을 선택한 셈이다.
김정은 국무 위원장은 수해 현장을 직접 찾아 나흘 동안 머물며 복구를 진두지휘했다.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도 잇따랐다. 사회 안전상이 경질됐고, 평안북도당·자강도당 책임비서도 교체됐다. 그러면서도 구조 임무에 나선 헬기 부대에 훈장을 수여하고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보였다. 재난 한복판에서도 체제의 메시지는 멈추지 않았다.
북한식 재난 복구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 군과 청년 건설 조직이 복구의 핵심 인력을 맡는다. 조선인민군 장병들과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가 현장에 투입됐다. 복구는 단순한 원상 복귀가 아니라 지도자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그리고 국제 지원을 배제한 '자력갱생' 방식은 속도와 투명성 양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대북 제재와 경제난 속에서 대규모 건설을 동시에 밀어붙이다 보니 내구성이 떨어지는 자재 사용과 날림공사의 우려가 뒤따르기도 한다. 예방보다 사후 복구에 치중된 예산 구조도 고질적인 문제이다. 배수시설 확충이나 사방공사 같은 예방 투자가 부족하다 보니, 매년 같은 지역에서 수해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반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상 관측 설비의 노후화와 실시간 데이터 공유 체계의 미비 역시 초기 대응 능력의 구조적 취약점으로 지목된다.
수해의 땅에 들어선 온실,
신의주 온실종합농장
2024년 수해 이후 북한이 가장 강조한 복구 성과는 위화도에 들어선 신의주 온실종합농장이다. 고려를 세운 이성계가 군사를 돌렸다는 역사의 섬, 수해에 반복해서 시달려온 그 위화도가 이제 초대형 온실농장으로 탈바꿈했다.
신의주 온실종합농장 공사 현장 (AI 활용 이미지)
2025년 2월 착공식을 시작으로 약 1년 만에 완공된 이 농장은 축구장 625개에 맞먹는 약 450헥타르(ha) 규모다. 1,150여 동의 온실과 저장시설, 남새(채소)과학연구센터가 들어섰고, 태양광 발전과 지열냉난방시스템을 갖춰 연간 8개월 이상 채소 수확이 가능하다고 북한 당국은 밝혔다. 온도와 습도, 영양액을 컴퓨터로 자동 조절하는 수경재배 시설을 도입해 기후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상시 생산체계를 목표로 삼고 있다. 준공 8일 만에 토마토, 오이, 고추, 배추 등 첫 채소를 수확해 신의주 각급 기관과 학교, 보육원에 공급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착공식부터 준공식까지 1년 동안 이곳을 무려 여섯 차례 방문했다. 준공식 연설에서는 "대대로 물난리를 숙명처럼 여기던 이곳에, 천년 홍수에도 끄떡없을 든든한 방벽의 보호 속에 새 삶의 터전이 펼쳐졌다"고 했다. 북한 매체는 이 농장을 "천지개벽"과 "보물섬"이라 불렀다. 함경북도 중평, 함경남도 연포, 평양 강동에 이어 이제 국경 지역에도 대규모 현대식 농장이 들어선 셈이다. 매년 홍수 위험에 노출된 노지 농업 대신, 통제된 환경의 온실로 기후 회복력을 높이는 동시에 국경도시 신의주 주민들에게 신선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민심을 수습하겠다는 계산이 담겨 있다.
신의주 온실종합농장 (AI 활용 이미지)
그러나 외부의 시선은 냉정하다. 위성영상 분석에서 작물 생장에 필요한 전기 조명이 거의 포착되지 않았고, 실제 가동률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년은 걸렸을 공사를 1년 만에 강행한 속도전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외형은 갖춰졌지만, 실제 운영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남북 재난·농업기술 협력의
가능성
북한의 수해는 결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는 한반도 전체를 바꾸고 있으며, 압록강과 두만강, 한강은 어떤 경계도 가리지 않는다. 이번 재난은 한반도 전체가 하나의 기후공동체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신의주 온실종합농장 건설은 북한이 기후 재난 이후 농업 재건을 국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스마트 농업, 시설원예, 지열·태양광 활용 기술 등은 북한이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한 분야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협력의 방향은 두 갈래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기상·기후 데이터 공유와 재난예측시스템 구축이다. 한반도 전역의 관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나누고 공동 홍수 예측 체계를 만든다면, 북한의 인명 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임진강·북한강 유역 남한 지역의 수해 예방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다른 하나는 농업기술 협력이다. 남한이 축적한 스마트팜 기술과 기후 적응형 종자 개발 역량은 신의주 온실종합농장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데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일방적인 식량 지원을 넘어, 스스로 재난을 이겨내고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기술 중심의 협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당장의 직접 협력이 어렵다 해도, 재난 데이터 공유나 국제기구를 통한 기술 지원과 같은 낮은 단계의 접점부터 차근차근 모색할 수 있다. 위화도가 수해의 땅에서 채소밭으로 바뀌었다면, 그 다음은 협력의 밭이 될 수도 있다. 재난과 농업은 이념과 체제를 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짊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무리
2024년 압록강 홍수는 북한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공식 수치만으로도 수천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고, 수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신의주 온실종합농장은 그 상처 위에 세워진 새로운 시도다. 선전의 외피를 걷어내고 보면, 재난 이후 농업 재건과 식량 안정이라는 절실한 과제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재난은 경계를 허물고, 농업은 사람을 잇는다. 그 단순한 진실이 언젠가 협력의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
※ 본지에 실린 내용은 기고자 개인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