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같은 기후를 살고 있다
저는 통일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고 신뢰를 축적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오며, 이러한 생각은 더욱 구체적인 문제의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올해 봄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가 주관한 「2026년 제1차 남북 인도협력 아카데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글·사진.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정치외교학과 김은준
아카데미는 남북 인도협력의 역사와 의미를 배우는 강의부터 현장탐방, 조별 공모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남북출입사무소를 방문했던 경험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은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와 달리 남과 북의 주민들이 함께 삶의 문제를 고민할 기회는 여전히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라산역에 서서 언젠가 이곳을 통해 다시 사람들이 오가고 협력이 이어질 수 있을지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아카데미의 마지막 과정은 조별 인도협력 사업 제안서 공모였습니다. 저희 조는 여러 차례 토론 끝에 「생활권 기반 기후재난 대응형 식량정원 인프라 구축 사업」을 제안했고, 감사하게도 최우수상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업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고민했던 것은 '지속 가능한 남북 인도협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인도적 지원은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때로는 지원하는 쪽과 지원받는 쪽이 구분되는 구조 속에서 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남북협력이 일방적 지원에 머무를 경우 북한을 협력의 주체가 아닌 수혜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보다 어떤 문제를 함께 해결할 것인가에 주목했습니다.
출처: 2026년 제1차 남북 인도협력 아카데미
C조 제작
그 과정에서 눈에 들어온 것이 기후위기였습니다. 홍수와 가뭄, 산림 황폐화와 산불은 휴전선 앞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기후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서 남과 북을 '기후공동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기후위기는 우리가 함께 대응해야 할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조는 그 중에서도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산림복구 정책과 지방발전 정책 사이의 간극에 주목했습니다. 산림 복구는 진되고 있지만 주민들의 생계와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있었고, 생활 인프라는 확충되고 있지만 이를 보호할 재난 대응 체계는 부족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나무를 심더라도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다시 산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산추림 복구와 주민의 생계를 따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안한 것이 '식량정원'입니다. 생활권 주변 경사지에 산나물과 약용작물, 과실류 등을 함께 조성하여 평상시에는 식량과 생계 자원을 제공하고, 집중호우나 산사태와 같은 기후재난 상황에서는 생활 인프라를 보호하는 모델입니다. 숲을 보호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숲을 가꾸는 일이 주민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산림 복구와 식량안보, 재난 대응을 하나의 틀 안에서 연결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번 아카데미를 통해 제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큼이나 실현 가능한 대안을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조별 토론 과정에서도 단순히 북한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보다 북한이 왜 이 사업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주민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운영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문제의식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이야말로 인도협력의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청년 세대가 남북문제에 무관심하다는 통념 역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통일이라는 담론에는 거리감을 느낄 수 있지만,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전쟁 위험과 같은 현실의 문제에는 높은 관심을 보입니다. 결국 남북협력 역시 거대한 정치적 구호에 머무르기보다 사람들이 체감하는 삶의 문제와 연결될 때 더 많은 공감과 참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는 선언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는 협력의 경험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 그리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쌓일 때 비로소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번 아카데미는 저에게 남북 인도협력을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한 소중한 계기였습니다. 언젠가 남과 북이 함께 가꾼 작은 정원들이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키워내는 토양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본지에 실린 내용은 기고자 개인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