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의
남북교류 이야기
글. 이은형 신부
(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 현 의정부
교구 총대리 가톨릭동북아평화 연구소장)
- 장충성당(옆면)(2006년 12월), 미사가 끝난 후
1984년 한국 천주교회에 큰 행사가 개최됩니다. 한국에 천주교가 시작된 지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서울에서 열리게 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과 더불어 '103위 순교자들의 시성식'이 성대하게 치루어진 것입니다.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1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평양에서 있었음을 기억하고, 그동안 소홀하게 지나쳐왔던 북한교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게 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행사에 앞서 '북한선교부'를 구성하여 북한 교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였고, 200주년 행사를 마치면서는 교회 공식조직으로서 주교회의 산하에 '북한선교위원회'를 설치하게 됩니다.
기도운동과 계몽운동을 활발하게 펼쳐 나가던 중 1987년 '비동맹 각료회의'에 바티칸 대표 자격으로 장익 신부가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때 북한 내 천주교 신자들과 첫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그들을 교황청에 초대하여 교황님을 알현할 수 있도록 주선합니다. 이에 맞추어 북한에서는 1988년 6월 '조선 천주교인 협회'를 결성하였고, 그해 10월 '장충성당'을 건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10월 30일 교황 특사 자격으로 장익 신부와 정의철 신부가 평양을 방문하여 장충성당에서 북한의 교우들과 함께 감격스러운 첫 미사를 봉헌합니다.
- 장충성당(2011년 11월), 미사가 끝난 후
- 콩기름 공장 방문(2008년)
- 국수공장
(서울대교구 지원으로 운영되는 공장)(2006년)
- 어린이 영양제 공장 방문(2006년)
이후 1995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민족화해위원회'를 발족하였고, 북한교회 관계자들과 공식적인 만남과 더불어 본격적인 대북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1990년대 중반이후 극심한 식량란을 겪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긴급구호 물품을 전달함과 동시에 북한 지역 내에 국수공장을 상시 운영하기 시작였습니다. 더 나아가 '콩기름 공장'과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제 공장’ 등을 설치하여 적극적인 교류협력을 이어가게 됩니다. 동시에 종교적인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하여 1998년 평양교구장 서리인 김수환 추기경을 대신해 최창무 주교를 비롯한 7명의 위원들이 장충성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함께 봉헌하기도 하였습니다.
1999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북한선교위원회'를 '민족화해위원회'로 개칭하였고, 각 교구 산하에 같은 조직을 두어 함께 기도하고 활동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후 각 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결성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개시하였고,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는 각 교구의 활동을 공유하고 때로는 연대하여 북한과의 교류 협력에 통일성을 기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 수해돕기 물품 지원 긴급구호(2007년)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협력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서울 대교구를 필두로 각 교구가 개별적으로 혹은 지역사회와 연대하여 인도적 지원사업에 참여하였고, 긴급구호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함께 연대하여 구호물품을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보수정부가 집권을 하면서 인도적 지원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급기야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북한과의 교류협력사업이 전면 중단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 주교단 방북(2015), 국가선물관
남북관계가 냉각기를 겪고 있을 때 한국 천주교회는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끊임없이 북한방문을 타진하였고, '카리타스 인터내셔널'을 통해 인도적 지원사업도 제한적으로나마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 소속 주교님들의 방북이 성사되었습니다.
- 주교단 방북(2015), 김일성고향집 만경대 방문
- 주교단방북(2015), 평양애육원
- 주교단방북(2015), 평양양로원
- 평양 여성병원(2015)
- 주교단방북(2015), 옥류아동병원
주교님들의 방북 시, 북한교회 관계자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 방문단을 맞이하고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평양의 변화되고 발전된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 바깥 풍경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제지도 없었고, 오히려 사진촬영을 독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평양의 발전상에 대해 자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평양 시내의 모습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 주교단 방북(2015), 장충성당미사
- 성가대와 함께(2015), 미사 후 주교님들과
북한 장충성당 성가대원 기념 사진
방문단은 평양의 장충성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비롯한 여러 예식들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인민대회당을 방문하여 인민대의원회 의장과의 면담도 진행하였습니다. 특별히 북한교회 관계자들과 만나 종교적 교류협력과 관련하여 여러 의미있는 합의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한국 천주교회가 장충성당 재건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약속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방문 이후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하였고, 종교적 교류와 협력은 완전히 단절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주교단 방북 장충성당 미사(2015)
- 주교단 방북 장충성당 미사(2015)
- 연탄나눔(2007년 1월),
북한 주민들의 연탄하적 작업
교구별 인도적 지원사업 중 2007년 천주교 의정부교구와 춘천교구는 특별한 지원사업에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개성과 금강산을 통한 ‘연탄지원 사업’이 그것입니다. 보통 연탄지원이 이루어질 때 한 번에 5만장의 연탄이 북으로 들어갑니다. 25톤 트럭 7대에 연탄을 가득 싣고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연탄지원에 도움을 주신 분들 30여명이 버스를 타고 함께 들어갑니다. 차량이 연탄을 내리기 좋은 둔덕 옆에 줄을 대어 서게 되면, 북한 주민 100여명이 나와 연탄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초기에는 버스에 타고 있는 남쪽 사람들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연탄을 내리고 있을 때 시원한 버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북쪽 담당자에게 우리도 함께 연탄을 내릴 수 있도록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 연탄나눔(2007년), 남쪽 참가자 기념사진
- 연탄나눔(2007년 1월), 휴전선 너머 봉동역
- 연탄나눔(2007년 10월),
남과 북이 함께 연탄하적 작업
- 긴급 식량지원(2011년), 서울대교구
다음 번 연탄나눔에는 아예 처음부터 북한 주민이 함께 하게 되었고, 그 이후는 아예 차량 사이의 경계 없이 남쪽과 북쪽 주민이 함께 어우러져 연탄을 내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연탄재로 검게 그을린 모습 속에 누가 남쪽 사람이고 누가 북쪽 사람인지 잘 구분도 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사탕을 입에 물려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도 정겹게 보였습니다. 서로를 이어주는 대화의 주된 주제는 주로 자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자녀교육에 대한 것은 남이든 북이든 공통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자주 만나고 소통하면 남과 북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녹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이 다시 시작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그 날을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