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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접경권 경제협력의
재구상

-경기북부를 중심으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에게 '남북 경제협력'은 교과서 속 개념에 가까웠습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뉴스에서 몇 번 스치듯 들었던 이름들이었죠. 지난 6월 30일 '청년이 제안하는 남북 경제의 미래 토론회' 제 1세션에서 발제자로 나서면서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 대학생인 내가 남북 경제협력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뭘까." 준비하는 내내 이 질문 하나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국제통상학과에서 무역과 물류, 공급망을 공부해온 터라 이 질문에도 제 전공의 언어로 답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발제문 제목이 「남북 접경권 경제협력의 재구상 - 경기북부를 중심으로」입니다.

글·사진. 대진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김종윤

접경지역을 다르게 읽다

자료를 찾다가 눈에 걸린 숫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경기북부의 1인당 지역 내 총생산(GRDP)은 경기남부의 약 60% 수준입니다. 파주·연천처럼 군사분계선에 가까울수록 군사시설보호구역, 수도권 규제, 자연보전권역까지 3중 규제에 묶여 개발이 오래 더뎠고요.

이 숫자는 보통 '낙후'의 증거로 읽힙니다. 그런데 발제를 준비하며 다르게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서울과 붙어 있으면서 아직 개발이 안 된 넓은 땅이라면, 약점이라기보다는 남은 개발 여력에 가깝지 않을까요. 접경지역을 분단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조건이 갖춰졌을 때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관문으로 보자는 게 발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남북의 통로는 어느 때보다 닫혀 있습니다. 2024년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연결도로를 폭파한 일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이 협력의 성격부터 다시 정의했습니다. 북한을 돕는 시혜성 사업이 아니라, 경기북부를 제조·물류 거점으로 키우는 우리 몫의 투자라는 쪽으로요. 남북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든 경기북부의 인프라와 제도를 준비해두는 일 자체는 우리에게 남는 장사라는 뜻입니다.

단계별로 가야 하는 이유

그래서 무엇부터 손대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남긴 교훈부터 봤습니다. 두 사업 모두 정치 상황이 한 번 바뀌자 통째로 멈췄습니다. 다음 협력은 전부를 거는 방식 말고, 중단돼도 손실이 작고 되돌릴 수 있는 단계적 설계여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첫 단계, '점(點)'은 북측 호응이나 국제사회 제재 완화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 힘만으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준비입니다. 평화경제특구 지정, 역외가공·원산지 특례 같은 제도부터 갖추는 일입니다. 실제로 정부는 2026년 6월 민간인출입통제선을 8km에서 6km로 북상시키기로 했고, 「평화경제특구법」에 따라 연천·파주·포천이 특구 후보지로 검토 중입니다. 제도의 그릇은 이미 조금씩 채워지고 있습니다.

교류가 재개되면 '선(線)' 단계로 넘어갑니다. 개성공단형 위탁가공을 다시 잇고 경의선 물류를 복원하는 식입니다. 더 나아가면 부산항에서 경의선과 대륙철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면(面)' 단계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참고한 사례는 중국 선전입니다. 작은 어촌에서 출발해 개방도시, 경제개방구로 단계를 넓혀간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발표대 위에서, 발표대 아래에서

발제 못지않게 남는 건 토론 시간이었습니다. 같은 세션 발표자들은 문화교류, 청년 일자리, 환경협력처럼 저와는 전혀 다른 얘기를 들고 왔습니다. 누군가는 통일을 아득한 정치적 사건으로 말했고, 누군가는 이미 시작된 경제적 준비 과정으로 말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서기 전까지는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독일 통일 사례를 조사하면서 그 생각이 깨졌습니다. 독일은 통일 후 30년간 동독 지역에 약 2조 유로, 우리 돈으로 약2,600조 원을 쏟아부었는데도 동독의 1인당 GDP는 아직 서독의 75% 수준입니다. 통합의 충격이 그만큼 오래갑니다. 통일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준비해야 그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토론회장을 나서며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남북문제를 이념이나 정치의 언어로만 얘기하면 저 같은 청년은 끼어들 틈이 별로 없습니다. 통상·물류·지역경제의 언어로 옮겨놓으니 그제야 제 전공, 제 관심사와 맞닿는 지점이 보이더군요. 다른 참가자들도 각자의 전공으로 이 문제에 다가왔을 거고, 그 다양한 접근이 모인 자리 자체가 이번 토론회의 의미였다고 봅니다.

무형의 교역이라는 숙제

다만 발제를 준비하며 계속 걸리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남북 접경권 경제협력을 다시 그려보자는 제안 자체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여건 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적인 예로 북한은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며 1972년부터 54년간 이어온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이름을 지웠습니다. 서문과 본문에 있던 '조국통일', '북반부' 같은 통일 관련 표현도 다 삭제됐습니다. 대신 헌법 제2조에 처음으로 영토 조항을 신설해 대한민국을 국경을 맞댄 별개 국가로 명시했습니다. 접경권을 관문으로 다시 그려보자는 이 제안의 상대편이, 헌법으로 통일이라는 목적지 자체를 지운 셈입니다. 그래서 이번 발제는 당장의 실현이 아니라, 조건이 갖춰졌을 때 헛되지 않을 준비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같은 시기 북한이 AI에는 오히려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 ICT 전문가 24명을 대상으로 한 국내 매체의 최근 조사를 보면, 북한은 올해 국가 차원의 AI 발전 계획과 법제 수립을 추진 중이고 생성형 AI 시범 서비스, 이른바 '북한판 챗GPT' 출시 가능성까지 나옵니다. 농업·국방 분야에 AI를 우선 적용하고, 4G 통신망 확대와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구축도 같이 진행 중입니다. 체제는 갈라서는데, 디지털 인프라는 각자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교류가 다시 열렸을 때 준비할 것도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 남북 교역은 섬유·봉제·원자재처럼 눈에 보이는 물체가 국경을 넘는 방식이었지만, 지금 무역은 다릅니다. 데이터·소프트웨어·AI 모델처럼 형체 없는 자산이 오가는 비중이 훨씬 큽니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발전시킨 디지털 인프라를 어떻게 연결하고, 이 무형 자산을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주고받을지에 대한 논의가 물류·통관 제도와 함께 준비돼야 합니다. 기존 남북교류협력법 틀로는 다루기 어려운 새로운 협상 영역이고, 결국 별도의 법으로 명확히 규정해야 할 다음 과제라고 봅니다.

※ 본지에 실린 내용은 기고자 개인의 견해입니다.